계림 본당 (함흥교구)

산악 지대, 그 안의 복음의 씨앗

백두산으로부터 뻗어 내려가는 하나의 산맥, 그리고 좌우를 아울러 가르는 또 하나의 산맥. 두 산맥이 만나 갈라지는 험준한 산악 지역, ‘함경도’.

1920년, 원산 대목구가 설정되며 이곳 함경도는 베네딕도회의 관할이 됐다.

깊은 산기슭에 둘러싸인 땅은 복음의 씨앗, 그 싹을 틔우기에 쉽지 않았다. 그러나 북부 두만강 연안에 위치한 ‘회령’에 그 첫 본당을 설립함으로써 차차 가능성은 열리기 시작했다.

‘계림 본당’의 설립

1920년대 후반. 회령의 신자 수는 760명, 공소는 무려 13개에 달했다.

대부분의 원산대목구 본당들이 해변 도시에 세워진 것과 달리, 내륙 두만 강변에 세워졌던 회령 본당이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더욱 거세어진 일제의 교회 탄압.

그러나 오히려 확장되는 교세에, 1940년 들어 회령 본당을 잇는 또 하나의 내륙 본당이 분할되어 세워졌다.

이는 회령으로부터 몇 정거장 떨어지지 않은 ‘계림’의 본당이었다.

‘계림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프리돌리노 침머만 신부가 부임했다.

소리 없이 찾아온 어둠

어느덧 해방이 찾아왔다. 앞으로의 밝은 나날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또 다른 위기는 어김없이 엄습해왔다. 공산당의 탄압이 시작됐다. 신앙심이 약한 신자들은 교회를 점차 멀리했다.

곳곳에서 안타까운 소식들이 전해져왔다.

1945년 여름 밤, 회령 본당의 주임 파렌코프 신부가 피살됐다. 약탈을 자행한 소련군의 소행이었다. 회령 본당의 주임 자리는 공석이 됐다.

그리고 1946년, 계림 본당은 침머만 신부의 비보를 전해야만 했다. 본당의 운영은 중단됐다.

어둠속 불을 밝힐 수만 있다면-

1949년, 희미하게 남겨진 두 본당의 신자들을 돌보기 위해 자원한 신부가 있었다. 그는 흥남 본당의 주임 ‘구대준’ 신부.

구 신부의 결심에, 그의 동생은 월남을 권유하며 이를 말렸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저 독일인 성직자들은 고국을 버리고 한국에 와서 이 고초를 겪는데, 내야 내 땅, 내 교구, 내 본당, 내 교우들이 있는데 이를 버리고 가기는 어디를 가느냐?”

‘부활’의 희망이 생겼다. 꺼져가던 불씨가 다시 그 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에 꺼져버린 불씨

그러나 차디찬 바람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인가.

1949년 5월, 원산 수녀원에 피정을 지도하러 간 구 신부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날 밤. 그는 정치보위부원들에게 체포됐다. 다음날 평화인민교화소로 이송되어 수감됐다.

그 해 가을이 지나자 아무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불씨는 타오르지 못한 채 어둠 속에 그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