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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 나진웅기본당 소개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16-06-29 14:3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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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16-06-29 14:38:29

나진웅기 본당(함흥교구)


계획된 항구 도시 ‘나진’
한국과 중국을 구분하는 공간. 두만강이 동해로 흘러드는 곳으로부터 남쪽에 위치한 ‘나진’. 그리고 그곳에는 가난한 어부들이 모여 살던 조그마한 마을 ‘웅기’가 있었다.

일본은 아시아 대륙을 넘어 유럽으로 진출하기 위한 관문을 원했다. 거대 물류 기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작은 도시를 선택했다.

곧 한국, 만주, 소련을 잇는 거대한 항구가 건설됐다. 철저한 계획 아래 만들어진 정치적, 경제적 요지였다.

그리고 이곳에는 신자 200명이 있었다. 발전 가능성을 엿보았던 많은 이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주해왔다. 교세의 증가가 자연스레 뒤따랐다.

실체 없는 본당, 그럼에도-
계속되는 교세의 확장. 웅기읍에 본당을 창설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1936년, 침머만 신부가 본당의 주임 신부로 임명됐다. 그는 위치가 좋은 성당 부지를 마련했다. 그러나 당분간 ‘실체 없는 본당’으로 예정될 뿐이었다.

도시의 도로가 완공되지 않았던 상황이었기에, 그리고 재정상의 문제 또한 무시하지 못했기에. 본당의 건축은 적당한 시기를 찾아 미뤄졌다.

그럼에도 400명을 웃돌았던 신자의 수.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신부’였다.

침머만 신부는 나남 본당에 상주하며 나진 본당을 관리했다. 그가 나남 본당을 떠난 후에도, 나남 본당의 신부들은 계속 나진 본당을 관리하는 데 힘을 쏟았다.

돌아올 수 없는 신앙의 보금자리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은 국경 지역에 유럽인들의 출입을 막았다. 이에 교구 신부인 임화길 신부가 나진 본당을 맡아 사목했다.

그로부터 4년 후 다가온 해방.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도 잠깐일 뿐, 앞으로의 본당의 나날에는 보이지 않는 어둠이 예견됐다.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임화길 신부, 그리고 그의 지인들은 어김없이 한 자리에 모여 통일된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나 1948년의 어느 날. 그들이 체포, 연행됐다. 공산 정권의 모든 시선이 안 신부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떠나야만 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모든 교회 재산이 공산 정권에 의해 몰수당했다. 나진의 신자들은 그들의 보금자리를 잃었다. 돌아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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