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 본당(함흥교구)

사목구의 공백을 채워줄 그곳

한반도 북동해안 ‘북청’과 ‘나남’. 그 사이 사목구의 공백을 채울 선교의 거점이 필요했다.

이에 선정된 곳은 함경북도 남부지역에 위치한 ‘성진’.

서양 문물을 들여왔던 주요 항구도시 중 하나로 그곳에의 본당 설립은 불가피했다.

1941년, 계획대로 본당이 세워졌다. 초대 주임으로 이철희 수녀의 동생 이재철 신부가 부임했다.

신부의 근심

1945년의 여름. 작은 종탑이 있는 작은 성당. 그리고 그 옆에 지어진 한옥 사제관이 보인다. 제르트루다 수녀의 방문에 그녀를 맞이한 평복 차림의 이재철 신부였다.

인자한 목자의 얼굴에는 어두운 낯빛이 스며있었다. 청진에서 들려오는 소문을 듣고 근심하던 그였다.

얼마 지나지 않은 9월, 청진 본당 바인거 신부의 비보 소식이 전해졌다.

청진 본당에 주임 신부는 공석으로 남았다.

주임 없는 본당의 운명

이후 1949년, 덕원 수도원 루치오 로트 원장 신부에게서 편지가 당도했다.

“성진 본당 이재철 베드로 신부는 청진 본당으로 이동합니다. 성진과 나남 두 본당은 계속 공석으로 남습니다.”

이 신부가 청진 본당의 2대 주임으로 전임됨으로써 성진 본당에는 더 이상 주임 신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본당의 운영이 더 이상 불가했다.

멎어버린 신앙의 심장

성진 본당의 유일한 주임이었던 이재철 신부. 신자들에게 언제나 ‘어질고 선한 목자’로 불렸던 그였다. 청진 본당으로의 전임 후에도 그는 여전했다.

그러나 불행은 어김없이 목자들을 향해 찾아왔다. 1949년, 교구장 사우어 주교를 비롯한 함흥과 덕원의 성직자들이 공산 정권에 의해 체포됐다. 가중되는 탄압의 상황 아래 끝까지 함경도 지역의 교우들을 돌본 이 신부였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그 어느 때보다 어둡고 날 섰던 새벽이었다. 정치보위부 요원들이 그를 찾았다.

그 해 10월. 쌀쌀해진 날씨를 뒤로, 청진항만에서는 수십 발의 총소리가 들려왔다. 신부의 심장박동은 멎었고, 본당의 맥은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