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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 북청본당 소개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16-06-17 11: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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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16-06-17 11:26:11

북청 본당(함흥교구) 

 

천주교의 공간을 추구하던 이들

1930년경, 서적을 통해 천주교를 접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북청 지역의 전하건과 전현.

함흥 본당에서 세례를 받고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한편 영흥 본당의 히머 신부는 본당 설립을 알아보기 위한 노력 중에 있었다. 그가 북청 지역에 자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조선식산은행 지점장 박봉노와 예비 신자 박의석 등은 8,500여 평의 성당 부지를 마련했다.

 

성당 설립을 위한 노력들이 모였다. 1935, 북청 본당이 설립됐다.

초대 주임은 본당 설립에 공헌한 히머 신부였다.

 

신자들이 원했던신부

초대 주임인 히머 신부는 두 달 만에 흥남 본당으로 전임됐다. 이에 2대 주임으로 파렌코프 신부가 부임했다.

 

파렌코프 신부는 부임 두 달 만에 교구장 사우어 주교의 집전으로 성당 축성식을 거행했다. 그는 교육 사업에도 힘써 이듬해 4년제 소학교 해성학교를 인가 받은 후 1937, 지역 유지들의 도움으로 교사를 증축하기도 했다.

 

신자들은 파렌코프 신부를 믿고 따랐다. 그러나 그 해, 덕원 수도원의 경리 신부로 전임된 그였다. 그를 이어 엔크 신부가 후임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본당 신자들은 파렌코프 신부를 원했다.

그를 다시 모시기를 간절히 바랐다.

 

사우어 주교는 이에 파렌코프 신부를 북청 본당 4대 주임으로 재임명한다.

 

신자들과의 긴밀한 유대 관계를 가진 파렌코프 신부. 그는 그 유대감을 바탕으로 본당 정착에 주력했다.

 

비어있는 자리, 비어가는 그곳

그러나 1942, 파렌코프 신부가 회령 본당으로 전임되며 북청 본당 신자들과 작별했다. 그리고 그의 보좌 폭스 신부가 5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3년 후 병사하고 말았다.

 

목자 없는 본당은 공산 정권의 탄압을 이겨내기가 더욱 벅찼다.

끝까지 버텨내지 못했다. 그렇게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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