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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 사창본당 소개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16-03-15 13: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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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16-03-15 13:30:05

사창 본당(서울대교구) 

 

성당을 향한 길을 내다

파리 외방전교회의 신부들은 전교를 위해 수안 땅에 파견됐다. 1895년, 르 장드르 신부가 평양 외성으로 옮겨 가며 수안 지역은 인접한 강원도 이천군 포내 본당의 관할이 됐다.

 

수안 지역 공소 가운데 가장 돋보였던 가마올, 들무정 공소.

이곳에서 포내 성당까지의 거리는 너무나 멀고 험했다. 주일은 물론 대축일 미사에도 참례하기가 쉽지 않았다.

 

신자들은 이에 기금을 모았다. 1918년, 제대와 제의, 성작 등을 마련했다. 본당 신부를 초청하여 미사를 드렸다. 그들은 곧 성당 건립 기성회를 결성하여 본당 승격 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1925년, 사창 본당이 신설됐다.

 

신자들의 계속되는 노력

초대 주임 박정렬 신부는 임시 성당을 건립하고 사목 활동을 전개했다. 교회의 발전에 대해 장기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사창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1928년, 그는 곡산으로 본당을 이전한다. 그리고 사창 본당은 곡산 본당의 관할 공소로 격하됐다.

 

하지만 200여 명의 사창 공소 신자들은 포기하지 않은 채 포기하지 않았다. 기존의 성당 건립 기성회를 결성하고, 강당 건립 계획을 추진했다.

 

신자들의 열정 아래 불가능은 없었다. 1935년, 성당을 건립했다. 폐지된 지 11년 만인 1939년, 사창 공소는 본당으로 부활했다.

 

불안정한 본당의 운영

하지만 부활한 사창 본당은 지속에 불안한 낌새를 보였다. 2대 주임 이보환 신부, 3대 주임 임종구 신부가 각각 2년의 재임 후 다른 본당으로 전임됐다. 주임 신부의 부재는 결국 ‘공소로의 격하’를 불렀다.

 

다행히 948년, 안주 본당의 김충무 신부가 4대 주임으로 부임함과 동시에 사창 공소는 본당으로 재출발할 기회를 가지게 됐다.

 

어둠의 시대

그러나 상황이 기회를 따라주지 못했다. 북한 공산 정권의 종교 탄압이 시작된 것이다. 사창 본당에도 어두운 기운이 스며들고 있었다.

 

때마침 반갑잖은 소식이 들렸다. 김충무 신부가 해주 본당 한윤승 신부의 반공 음모 사건에 연루됐다는 것. 그는 곧 내무서에 연행되었다가 석방됐다. 이후 공산 정권의 감시와 심문이 그를 따라다녔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본당을 떠나 황주에 몸을 숨긴 김 신부. 1951년, 결국 그는 ‘월남’을 선택한다.

 

그리고 김 신부의 월남과 함께 사창 본당은 시대의 어둠에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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