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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 정봉본당 소개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16-03-15 13: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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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16-03-15 13:27:57

정봉본당(서울대교구) 

 


정봉 성당의 전신, 삼차동 본당

강원도 이천군에 인접한 신계 지방.

그곳의 공소들은 오랫동안 포내 본당 부이수 신부의 관할 하에 있었다.

 

그러나 1928년, 포내 본당으로부터 분리되어 삼차동에 그 본당이 설정됐다. 초대 주임으로 이보환 신부가 부임했다.

 

아이들의 ‘교육’에 힘쓰다

이보환 신부의 시선은 ‘교육’에 있었다.

지역 주민들의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려 했다.

 

이에 ‘자모학원’을 설립한다. 원장을 겸임하며 매년 300여원의 경비를 들여 학원 운영에 힘썼다. 그리고 그 결과, 자모학원은 학생 수 60여 명의 초등교육기관으로 성장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본당의 이전’

이 신부와 신자들의 노력은 계속됐다. 하지만 본당에서의 사목 활동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문제는 삼차동의 ‘지리’에 있었다.

 

삼차동은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었다. 본당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이에 2대 주임 김원영 신부는 움직였다. 교구장의 허가를 받아 본당은 정봉리로 이전됐다. 신자 김한영의 기증 부지에 새 성당이 지어졌다.

 

2년 후, 1937년.

‘총 교세 689명’, ‘교무금 총액 2만 7천원’

황해도 내 11개 본당 중 1인당 평균 교무금의 액수가 가장 많았다.

 

사라진 마지막 신부

김 신부는 칠순에 가까웠고, 그의 몸은 쇠약해져 있었다. 1936년, 성직자 피정에 참석 차 상경한 김 신부는 더 이상 정봉 본당에 돌아오지 못했다. 안타까운 선종 소식이 들렸던 것이다.

 

결국 김 신부의 뒤를 이어 이순성 신부가 부임했다. 광복 후 공산 정권의 종교 탄압은 걷잡을 수 없이 거세졌다.

 

공산주의자들은 이 신부를 향해 말했다.

“성당을 인민 위원회에 양도하라.”

이 신부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럴 수 없다.”

 

예상된 비극이었을까. 1950년, 전쟁이 일어난 열흘 후. 그는 신계읍 정치보위부원 2명에 의해 트럭에 태워졌다. 그리고 사라졌다.

 

그의 모습은 영영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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